[발달장애 정보]발달장애인과 함께하는 기업 : 첫 번째. 발달장애 예술가 에이전시 - 디스에이블드(THisabled)
디스에이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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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에이블드2020-10-06 10:11
안녕하세요! 디스에이블드입니다.
디스에이블드에 애정을 갖고 댓글남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최근 많은 이들이 은연 중에 '장애인'을 '장애우'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심지어 특정 대선 후보는 TV토론회에서 '장애우'란 표현을 공개적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이는 사회에서 격리되고 비정상적인 인간으로 분리되었던 '장애인'을 보다 친근하게 인간적으로 보이도록 하기 위한 일련의 노력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우'란 표현은 장애인을 비주체적이고 비사회적인 인간으로 형상화하고 구조화해 내는 단어입니다.일반적으로 사회집단 또는 계급, 계층을 표현하는 개념 또는 단어는 1인칭, 2인칭, 3인칭 모두가 가능한 표현으로 쓰여집니다. 예를 들어 '노동자'나 '여성'의 경우 타인 뿐만 아니라, 자신도 '노동자, 여성'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습니다.그런데 '장애우'란 표현은 타인이 나(장애인)을 지칭하거나 부를 때에만 가능한 것이지, 내(장애인)가 나(장애인)를 지칭할 때에는 절대 쓸 수 없는 용어입니다. 즉, 집단을 지칭하는 표현은 모든 인칭에서 쓰여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장애우'라는 표현은 1인칭에서는 쓸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장애우'란 표현은 사회집단 또는 계급, 계층을 표현하는 단어가 아니며 장애인을 사회집단, 계층이 아닌 비사회적인 집단 혹은 개인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장애우'란 표현은 '장애인'스스로가 자신을 지칭할 수 없기 때문에 비주체적인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합니다.특정 집단을 지칭하는 개념이나 단어는 그 집단의 정체성(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집단의 위치, 또는 사회적 관계)을 표현함과 동시에 주체적인 의식을 표현하는 것인데, 스스로가 자신을 지칭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가 주체적인 자신의 정체성을 거부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장애우'란 표현은 장애인 운동이 발전되어 온 역사에도 역행됩니다. 지난 시절 장애인을 재활 대상으로 바라보았던 '재활 패러다임'에서는 장애인은 자신의 삶의 주체가 아니었습니다. 이에 대항해 장애인 당사자 스스로가 권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운동이 전개되었고 그것이 오늘날 '자립생활 패러다임'입니다.'장애인'을 비주체적 인간으로 그려 내는 '장애우'란 표현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장애인을 삶과 권리의 주체로 내세우기 위한 장애인 운동의 시계를 뒤로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일부에서는 '장애우'라는 부드러운 표현이 장애인들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느냐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비사회적이고 비주체적인 그리고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부정하는 용어를 써 가면서까지 '장애우'를 고집한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그리고 일부에서는 '장애인이든 장애우든 상관없이 자신이 편한 대로 쓰면 되지 않느냐'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집단을 지칭하는 개념이나 단어는 그 집단의 사회적 관계와 위치를 반영하는 것입니다.누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했습니다. 언어의 힘은 매우 강합니다. 특히 집단을 지칭하는 개념이나 단어의 힘은 더욱 강합니다. 예를 들어 '여교사, 여학생' 등의 표현은 여성의 사회적 관계를 왜곡되게 표현하고 이를 강화해 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더 이상 편의주의에 사로잡혀 장애인을 비주체적, 비사회적인 인간으로 왜곡하는 '장애우'란 표현을 써서는 안 될 것입니다.그리고 장애인의 인권과 복지를 확대하기 위한 활동을 한다는 일부 장애인 단체마저 '장애우'란 표현을 쓰고 있는데 정말 아이러니 합니다. 도대체 장애인을 비사회적, 비주체적 인간으로 표현하는, 그리고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만드는 '장애우'란 단어를 단체명으로 사용하면서 어떻게 장애인의 인권과 복지를 확대할 것인지... 정말 안타깝습니다.이제는 장애인의 사회성, 주체성을 확대해가야 합니다. 이는 정치, 문화, 사회, 경제 등 모든 영역에서 진행되어야 하며, 동시에 사회적 관계, 집단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단어에서도 시작되어야 합니다.지난 시절 '불구자'에서 '장애인'으로 바꾸어 나갔던 경험을 곱씹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더이상 장애인을 비주체적이고 비사회적 인간으로 형상화하는 '장애우'란 표현을 쓰지 맙시다
장애우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를 발췌해서 글을 남깁니다.
디스에이블드에서는 이러한 이유로 '장애우'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귀사에 관심을 나타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디스에이블드에 애정을 갖고 댓글남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최근 많은 이들이 은연 중에 '장애인'을 '장애우'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심지어 특정 대선 후보는 TV토론회에서 '장애우'란 표현을 공개적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이는 사회에서 격리되고 비정상적인 인간으로 분리되었던 '장애인'을 보다 친근하게 인간적으로 보이도록 하기 위한 일련의 노력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우'란 표현은 장애인을 비주체적이고 비사회적인 인간으로 형상화하고 구조화해 내는 단어입니다.일반적으로 사회집단 또는 계급, 계층을 표현하는 개념 또는 단어는 1인칭, 2인칭, 3인칭 모두가 가능한 표현으로 쓰여집니다. 예를 들어 '노동자'나 '여성'의 경우 타인 뿐만 아니라, 자신도 '노동자, 여성'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습니다.그런데 '장애우'란 표현은 타인이 나(장애인)을 지칭하거나 부를 때에만 가능한 것이지, 내(장애인)가 나(장애인)를 지칭할 때에는 절대 쓸 수 없는 용어입니다. 즉, 집단을 지칭하는 표현은 모든 인칭에서 쓰여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장애우'라는 표현은 1인칭에서는 쓸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장애우'란 표현은 사회집단 또는 계급, 계층을 표현하는 단어가 아니며 장애인을 사회집단, 계층이 아닌 비사회적인 집단 혹은 개인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장애우'란 표현은 '장애인'스스로가 자신을 지칭할 수 없기 때문에 비주체적인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합니다.특정 집단을 지칭하는 개념이나 단어는 그 집단의 정체성(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집단의 위치, 또는 사회적 관계)을 표현함과 동시에 주체적인 의식을 표현하는 것인데, 스스로가 자신을 지칭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가 주체적인 자신의 정체성을 거부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장애우'란 표현은 장애인 운동이 발전되어 온 역사에도 역행됩니다. 지난 시절 장애인을 재활 대상으로 바라보았던 '재활 패러다임'에서는 장애인은 자신의 삶의 주체가 아니었습니다. 이에 대항해 장애인 당사자 스스로가 권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운동이 전개되었고 그것이 오늘날 '자립생활 패러다임'입니다.'장애인'을 비주체적 인간으로 그려 내는 '장애우'란 표현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장애인을 삶과 권리의 주체로 내세우기 위한 장애인 운동의 시계를 뒤로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일부에서는 '장애우'라는 부드러운 표현이 장애인들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느냐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비사회적이고 비주체적인 그리고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부정하는 용어를 써 가면서까지 '장애우'를 고집한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그리고 일부에서는 '장애인이든 장애우든 상관없이 자신이 편한 대로 쓰면 되지 않느냐'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집단을 지칭하는 개념이나 단어는 그 집단의 사회적 관계와 위치를 반영하는 것입니다.누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했습니다. 언어의 힘은 매우 강합니다. 특히 집단을 지칭하는 개념이나 단어의 힘은 더욱 강합니다. 예를 들어 '여교사, 여학생' 등의 표현은 여성의 사회적 관계를 왜곡되게 표현하고 이를 강화해 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더 이상 편의주의에 사로잡혀 장애인을 비주체적, 비사회적인 인간으로 왜곡하는 '장애우'란 표현을 써서는 안 될 것입니다.그리고 장애인의 인권과 복지를 확대하기 위한 활동을 한다는 일부 장애인 단체마저 '장애우'란 표현을 쓰고 있는데 정말 아이러니 합니다. 도대체 장애인을 비사회적, 비주체적 인간으로 표현하는, 그리고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만드는 '장애우'란 단어를 단체명으로 사용하면서 어떻게 장애인의 인권과 복지를 확대할 것인지... 정말 안타깝습니다.이제는 장애인의 사회성, 주체성을 확대해가야 합니다. 이는 정치, 문화, 사회, 경제 등 모든 영역에서 진행되어야 하며, 동시에 사회적 관계, 집단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단어에서도 시작되어야 합니다.지난 시절 '불구자'에서 '장애인'으로 바꾸어 나갔던 경험을 곱씹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더이상 장애인을 비주체적이고 비사회적 인간으로 형상화하는 '장애우'란 표현을 쓰지 맙시다
장애우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를 발췌해서 글을 남깁니다.
디스에이블드에서는 이러한 이유로 '장애우'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귀사에 관심을 나타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발달장애인 예술가 39명과 함께하고 있는 디스에이블드(THisabled) 입니당 -!!
발달장애인과 함께하고 있는 기업들이 굉장히 많은데요!
오늘은 첫 번째로 디스에이블드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짝짝짝)
디스에이블드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한 에이블러 분들을 위해 창립 계기부터 소개 드릴게요!!
짧은 만화를 먼저 보시죠 -!!
디스에이블드 대표님이 친구를 기다리던 중,
근처에 전시회가 있어 보러 가셨다고 해요.
1시간 남짓 전시회를 보고 있는데,
방문객들이 1명도 없었다고 해요ㅠㅠ
"색감도 특이하고 그림도 예쁜데 왜 아무도 없을까?"
라고 고민하던 찰나
발달장애 작가 작품전이라는 걸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림이 너무 좋아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를 고민하다
"발달장애인 예술가의 그림을 세상에 알려야겠다!"
라고 생각해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
"우리나라에서 발달장애인이 예술을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국내 발달장애인 수는 22만 명인데, 연간 7000명씩 늘어나고 있어요.
발달장애인 취업률은 5명 중 1명이고, 월평균 수입은 38만 원에그친다고 해요.
발달장애 예술가는 일반 에이전시에 소속되지 못해 기회의 부족을 겪고 있고,
보호자의 스트레스는 높아지고 있는데요.
디스에이블드는 문제점 3가지를 분석했어요.
1. 활동 기회 제공
2. 인식개선 캠페인
3. 아트 콜라보레이션
3가지를 통해 발달장애 예술가 에이전시로 해결하고 있어요.
발달장애 예술가의 지속적인 경제 수입과 사회 인식개선을 위해
전시, 아트콜라보레이션, 아티스트 브랜딩을 진행하고 있어요.
색감도 기법도 다른 개성 넘치는 발달장애 예술가들의 그림은
하티즘(Heart+ism)이란 단어로 바꾸어 주었어요.
하티즘(Heartism)은 그리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솔직하게 표현합니다.
하티즘 작가의 작품으로
1. 상품 제작 및 판매
2. 작품 대여와 공간 전시 기획
3. 브랜드 협업
4. 전시 기획 및 캠페인
을 진행하고 있어요.
그리고 현재 39명의 발달장애 예술가와 함께 하고 있고,
많은 기업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
홈페이지 내 다른 탭에서 제품과 다른 정보들도 보실 수 있어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작성 : 디스에이블드 디렉터 이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