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마음으로 선보이는 예술을 만들다

2019-06-10

인터뷰 | ‘디스에이블드’(THISABLED)의 김현일 대표를 만나다

승인 2019.05.19 19:54


선명한 색감과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디자인. 발달 장애인 작가의 예술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는 특징이다. ‘디스에이블드’(THISABLED)는 발달 장애인의 지속적인 상품 제작과 전시를 지원함으로써 이들을 도우려는 예술 에이전시다. 지난 15일(수), 발달 장애인을 위해 탄탄한 예술 기반을 마련해주고 싶다는 디스에이블드의 김현일 대표를 만났다.


김현일 대표는 “발달 장애인 작가가 작품 활동을 통해 즐거움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라고 이야기했다.


발달 장애인 예술의 기반이 되고자

디스에이블드를 만든 김현일 대표는 발달 장애인의 예술이 가지는 가치를 알게 된 후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윗집에 발달 장애를 가진 피아니스트가 살았다”며 “사업을 구상하기 전부터 발달 장애인이 개성적인 예술성을 가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김 씨가 본격적으로 이 사업을 계획하게 된 것은 대학로에서 우연히 발달 장애인 전시를 방문하게 되면서였다. 그는 “예상치 못하게 관람한 발달 장애인 작가의 전시가 감명 깊게 다가왔다”며 “전시 내용은 좋았던 반면 전시 전반의 관리가 허술했던 것과 관람객이 많이 없었던 점이 안타까웠다”고 이들의 예술 활동에 도움을 줘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을 회상했다.


디스에이블드라는 이름에는 발달 장애인의 예술 활동에 관한 인식을 바꾸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장애인’을 뜻하는 디스에이블드(disabled)의 첫 글자인 ‘d’를 ‘th’로 바꾸면 ‘가능하다’라는 의미의 ‘디스 에이블드’(this abled)가 된다. 예술 활동에 있어서 장애가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것을 원치 않는 마음이 잘 드러난다. 


현재 디스에이블드에는 35명의 발달 장애인 작가가 소속돼 있지만, 이들이 처음부터 이 사업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김 씨는 “초창기에는 발달 장애인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발달 장애인 국제미술대회 시상식에 찾아가 온종일 발달 장애인 예술가를 기다렸다”며 “그런 방식으로 한두 명씩 섭외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발달 장애인 예술가 네트워크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게 됐다”고 사업 초창기의 일화를 전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발달 장애인과 지속적으로 만나면서 교류하고 소통한다. 김 씨는 “작가들이 처음에는 우리를 어렵게 느꼈지만 지금은 회사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주거나 자신이 종이접기한 것을 주는 등 친밀함을 드러낸다”며 웃음을 지었다. 


작품 활동을 넘어 예술로

디스에이블드가 진행하는 주요 사업은 발달 장애인 작가의 미술 작품을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일이다. 이는 작가의 그림을 다시 디자인해 휴대폰 케이스나 머그잔과 같은 제품에 입히는 프로젝트다. 고객에게 판매되는 상품은 발달 장애인 작가가 그린 그림의 원본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그림 속 여러 소스를 따로 떼어낸 것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김 씨는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상품 중에서 그림이 들어가는 것은 웬만하면 디스에이블드에서 다 만들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단순히 작가에게 작품 활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이들이 일정한 액수의 돈을 벌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발달 장애인 작가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발생하는 수익의 30%는 이들에게 다시 돌아가 이들이 예술 활동을 지속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디스에이블드는 발달 장애인의 자유로운 예술 활동을 목표로 한다. 발달 장애인 예술가는 기성 작가가 사용하지 않는 색을 자유롭게 쓰고 그림을 그리는 틀을 정해 놓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디스에이블드는 발달 장애인 작가의 작품 속에 담긴 그들만의 정체성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김 대표는 “이들의 작품에는 저마다 고유한 이야기가 담겨있다”며 “이를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할 수 있도록 작품에 대한 요구 사항은 최소화해서 전달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디스에이블드에 소속된 발달 장애인 작가는 꾸준히 예술 활동을 지속하면서 그들만의 새로운 예술 사조를 제시하기도 한다. 올해 2월 ‘KT&G 홍대 상상마당 전시’에서 디스에이블드가 처음으로 선보인 ‘하티즘’(Heartism)이 그 예다. 하티즘은 작가가 작품을 통해 마음속에 있는 자신의 생각들을 솔직하게 표현하자는 취지의 사조다.


끊임없이 고민하는 디스에이블드 

디스에이블드는 국내 최초로 발달 장애인 예술을 만들어나가는 선구자 역할을 맡고 있다. 이들이 자연스레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 씨는 “발달 장애인의 예술 활동을 돕는 기업이 드물어 참고할 수 있는 사례가 많지 않다”며 “기업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디스에이블드는 더 나은 예술 활동을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소비자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작가나 다양한 작품 세계를 가진 작가들을 발굴하고자 하는 것이 그 일환이다. 김 대표는 “작품을 상품으로 재구성했을 때 자연스러운 디자인을 선보이는 작가를 뽑고자 한다”며 “예술 작품의 다양성을 위해서 동양화나 수묵 채색화와 같은 분야의 작가를 섭외하려 노력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발달 장애인 예술가뿐만 아니라 지방 작가와도 작업하며 디스에이블드의 활동 영역을 넓힐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디스에이블드는 발달 장애인의 예술 활동을 돕는 기업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이들의 예술 작품 자체에 대중이 관심을 갖는 날이 오기를 꿈꾼다. 예술에서 장애가 부각되지 않았으면 하는 이유에서다. 김 씨는 “디스에이블드에서 진행하는 모든 프로젝트에서 발달 장애인이라는 키워드를 버리고 하티즘을 도입한 것도 그 취지”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티즘 전시를 관람한 사람들은 이 전시의 작품이 발달 장애인 작가의 것이라는 걸 알고 놀란다”며 “디스에이블드가 발달 장애인 작가보다 이들의 작품에 초점을 둔 에이전시가 되길 원한다”고 부연했다.


디스에이블드는 앞으로도 다양한 방식으로 발달 장애인 예술가의 정체성을 보여줄 것이다. 특히 디스에이블드는 대중에게 이들의 예술 세계가 친숙히 다가올 수 있게 한다. 디스에이블드가 발달 장애인 작가의 예술 활동 기반으로 원활히 기능해 대중과 발달 장애인 예술가 사이의 훌륭한 징검다리가 되길 기대해본다.


사진: 황보진경 사진부장 hbjk0305@snu.ac.kr

출처 : 대학신문(http://www.snunews.com)